[전문번역] 페미니즘 연구 1: 여성의 투쟁, 투쟁하는 여성

사진: 아르헨티나의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 한 명도 적지 않다) 운동의 일환으로 열린 여성 행진에 참가한 참가자. 성별에 기반한 폭력, 임신중단 및 재생산권, 여성살해, 성별 임금격차 등의 주제로 전개된 니 우나 메노스 운동은 많은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출처: 바바라 레이바, 2018

사진: 아르헨티나의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 한 명도 적지 않다) 운동의 일환으로 열린 여성 행진에 참가한 참가자. 성별에 기반한 폭력, 임신중단 및 재생산권, 여성살해, 성별 임금격차 등의 주제로 전개된 니 우나 메노스 운동은 많은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출처: 바바라 레이바, 2018

1918년에 레닌은 여성의 참여 정도가 혁명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사실은 모든 해방운동의 경험에서 증명된다고 선언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의 발언은 혁명운동과 신자유주의 및 최근의 반동 포퓰리즘에 대한 저항운동을 건설해 온 여성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1917년 10월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라는 자극은 남반구의 식민지 농업국가에 일찌감치 도달해 사람들에게 일하는 다수가 착취하는 소수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믿음은 대중투쟁의 동력이 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정치 조직의 탄생을 자극했다. 20세기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식민지 해방투쟁이 나타났고,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 국가는 (수출) 의존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모순을 경험하는 한편 자생적인 저항운동에 직면하고 있었다. 여성은 이 모든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수 신자유주의의 파상공세에 대항하는 저항의 시대에,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는 여성의 투쟁, 투쟁하는 여성의 첫 번째 글을 게재한다. 이 글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여성의 투쟁에 대한 기초적인 분석이다. 신자유주의 및 신파시즘 정책은 여성에게 가공할 압박을 가했고, 그로 인해 여성은 삶의 불안정성, 탄압, 착취의 일차적이며 가장 주요한 타깃이 되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더욱 넓은 정치 영역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20세기를 통틀어 페미니스트 저항과 투쟁의 길을 열어 준 여성 단체의 건설을 개척한 투쟁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활동가의 임무는 이러한 여성들의 조직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학습하여 이들이 정치에 기여한 점을 더욱 잘 이해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필요한 조직을 건설하는 데에 영감을 주는 것이다.

여성과 불평등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세계의 특징은 엄청난 사회적,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남반구에서는 노동자가 신자유주의 정치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 정치, 사회 운동 세력은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안정성, 사회적 재생산 역량 고갈 등의 영향에 저항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 모순의 충돌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일어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일환으로 이러한 격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치, 생태, 사회적 재생산에서 나타난 모순은 비경제적 관계를 통해 그 힘을 회복하려 하던 경제의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 신시아 아루자, 티티 바타차리야, 낸시 프레이저가 설명하듯, ‘임금노동, 생산, 교환, 금융 등 자본주의의 공식 체제 뒤에는 가족, 공동체, 자연, 영토 국가, 정치 기구, 시민 사회와 같이 공식 체제가 필요로 하는 지원과 체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있다. 게다가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일 대부분을 포함하는 엄청난 양과 다양한 형태의 무임금 강제 노동이다. 이러한 노동 대부분은 여전히 여성이 전담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보상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2019, p. 64)

이러한 과제, 그리고 붕괴를 새로운 금융화(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보다 금융 거래(인수, 합병, 파생) 부문에 많이 투자하는 것) 경제를 향한 출발점으로 보면, 쉽게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예: 세계적 차원으로 불평등이 전례 없이 증가한 것)에 대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앞서 말한 모순이다. 최신 옥스팜 보고서(2020)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간 성별 임금격차가 유지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소수의 개인과 기업에 집중된 부가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가 소유한 부는 전 세계 인구의 92%에 해당하는 69억 명이 소유한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남성 22명이 소유한 돈은 6억 6,700만 명의 아프리카 여성이 소유한 것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착취와 탄압은 경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문화, 그리고 계급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보수적 논리를 뒷받침하는 도덕적 가치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사회 내의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가부장제의 구성 요소가 된다. 가족, 국가, 시민사회, 사회적 재생산 그 자체에 내재된 사회, 정치, 문화적 요소뿐만 아니라 노동의 조직, 분업 및 위계는 이러한 착취와 탄압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계급과 인종 등 다른 이슈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노동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방식은 노동의 성별분업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일의 구조는 남성과 여성의 일을 구분할 뿐만 아니라 남성이 하는 일을 여성이 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위계를 만든다. 또한 생산과 재생산의 분리를 촉진해 주로 남성이 많이 있는 경제의 생산 영역에서의 노동만을 ‘일하는 것’으로 만든다. 한편, 재생산, 돌봄, 가족, 가사일은 다른 영역으로 분리되어 ‘일이 아닌 것’ 또는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되었고, (대부분) 보수가 없으며 사회적으로도 평가절하된 경우가 허다하다.

옥스팜에 따르면 임금이 매우 낮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은 전 세계 무임금 돌봄 노동의 75%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전 세계의 여성과 여아가 매일 노인 돌봄이나 가정을 돌보는 등의 무임금 돌봄 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의 총량은 125억 시간이다(옥스팜, 2020). 그 결과, 42%의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었는데(노동 시장 밖에 있는 남성이 단 6%에 불과하다는 것과 대비된다), 주된 원인이 바로 과중한 가사노동이다.

이렇듯 커다란 격차는 여성 혐오적이고 고장 난 경제 체제에 기반한다. 이 때문에 여성은 현재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여성이야말로 이러한 위기의 영향을 가장 먼저 느끼는 존재이다. 위기로 일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임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 아동 교육(보육 서비스), 고령인구 돌봄 등과 같은 주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붕괴는 최근 신자유주의 확대로 더욱 심화되었고, 대부분 여성이 유지하고 있는 ‘돌봄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가정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집에서 여성 살해(페미사이드)로 사망한 피해자가 매년 90,000명 이상 발생하는 세상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저항과 투쟁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를 조각내고 정치계를 분열시켜 단일된 저항을 만들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와 포퓰리즘 정치의 급성장에 대한 대안이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사회주의 방식과 같은 다른 길 또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방운동의 역사적 활동을 기억하고 인도에서 칠레에 이르는 국가에서 일어난 대중적 저항운동의 유산을 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혹한 탄압과 폭력에 맞서, 자본주의의 위기가 불러온 경제적 착취로부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여성이야말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날로 증가하는 사회적 격변의 최전선에 서 왔다. 여성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사회 투쟁의 중심에 굳건히 서 있으며 대규모로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 기획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는 남반구에서 나타나는 진보적이고 여성주의적이며 대중적 저항 과정을 조명하고, 20세기에 투쟁했던 여성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나타나는 현시대 투쟁의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진 여성 행진에서 수 천만 명의 여성, 활동가, 사회운동가가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보우소나로에게 ‘#그는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사미아 봄핌 2018년 9월 29일

사진: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진 여성 행진에서 수 천만 명의 여성, 활동가, 사회운동가가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보우소나로에게 ‘#그는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사미아 봄핌 2018년 9월 29일

보수의 시대, 라틴아메리카의 투쟁하는 여성
라틴아메리카 우파는 선거와 다양한 형태의 제도적 쿠데타 모두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우파의 귀환은 지역 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가속화를 의미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특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베네수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교육, 보건, 사회적 지원 등에 대한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주요 공공 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좌파가 집권했을 때 가졌던 잠시의 휴식기가 지나서 보수 진영은 권좌를 되찾고, 즉각적으로 긴축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여성의 삶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이 지역에서는 보수 반동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우파 단체와 종교 단체가 여성과 성소수자를 우대하는 공공 정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학교 교과목에서 사용되던 ‘젠더’라는 단어를 없애버린다던가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제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우파는 소셜미디어와 기업 언론을 통해 소위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캠페인을 가차 없이 벌였다. 이러한 경향이 중앙아메리카와 페루에서 더욱 심하기는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수십 년 간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성과를 훼손할 정도로 위협이 되고 있다.

돌봄 경제에 대한 정부 지출 삭감, 여성의 권리에 반대하는 캠페인 등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여성은 급진적으로 변화했고, 세계 곳곳에서 집회에 사람들을 동원하고 진보적인 조직에 가입했다. 이제는 더 많은 여성이 다른 세상을 건설하는 투쟁에 여성주의적 비전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새 세상에 대한 요구는 가부장적 구조조정 정책에 대항한 투쟁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적 경향성과 신자유주의 물결은 성별분업, 젠더 폭력, 탄압 및 무수한 여성 착취를 심화시켰다. 이는 결과적으로 원주민, 흑인, 무토지 여성 등을 포함한 일하는 여성의 조직화를 가속화했고, 베네수엘라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 여성들은 반신자유주의, 심지어는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여성이 겪는 젠더 폭력과 탄압은 섹슈얼리티와 여성의 재생산 능력(실비아 페데리치가 이론화)에 대한 국가적 제한이 확대되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아르헨티나에서 대중이 임신 중단 합법화를 위해 싸우며 투쟁의 상징인 녹색 손수건을 손에 쥐고 대규모로 거리로 나온 것처럼, 전 세계 여성 단체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볼리비아의 경우, 2019년 에보 모랄레스와 사회주의운동당(MAS)이 쿠데타로 축출된 것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여성이 주축이 되었다. 쿠데타 이후, 우파 정부는 원주민과 전체 농민 인구를 모욕하고 탄압했다.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여성들의 시위가 요구하는 것은 자신을 대변하는 정부를 다시금 복원과 더불어 여성과 원주민의 해방이다.

브라질에서는 노동당 정부에 대한 쿠데타 이후 많은 수의 여성이 모였다. 2018년 9월에 있었던 유명한 엘 나오(‘그는 아니다’) 행진은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회였다. 수천 명의 여성과 남성이 브라질 전국 114개 이상의 도시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미소지니(여성 혐오)의 증가와 매우 보수적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선 후보의 선거운동에 반대했다.

2019년 보우소나루 대통령 치하에서 탄압, 권위주의, 도덕적 보수주의는 더욱 강화되었고 여성에 대한 폭력 비율도 급격히 높아졌다. 보우소나루 정권 첫 해의 상반기에 브라질 최대 도시(상파울루)에서 일어난 여성 살해는 전년대비 44% 증가했다. 4초당 1명꼴로 여성이 폭행당하는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퇴치하기 위한 공공 정책에 투입되는 금액은 2015년 노동당 집권 시기에 1억 1,900만 헤알(약 294억 원)이던 것에서 2019년 보우소나루 집권 후 530만 헤알(약 13억 원)로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브라질 여성가족인권부는 폭력 상황에 처한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3,470만 헤알(약 86억 원)에서 194,700 헤알(약 4,800만 원)으로 줄였다. 보육시설과 유치원에 대한 투자도 최근 10년 사이 최저치로 급격히 줄었다. 신규 보육시설과 유치원 건설 예산도 2014년 상반기 5억 600만 헤알(약 1,251억 원)에서 2019년 상반기에 1,020만 헤알(약 25억 원)로 쪼그라들었다. 이렇듯 늘어나기만 하는 정책적 무시와 일하는 여성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산 삭감은 정치, 사회, 문화적 보수주의와 권위주의가 확장되는 과정에 동반되어 나타났고, 브라질에서 새로운 차원의 여성의 저항과 조직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칠레에서는 최근 몇 년 간 여성주의 투쟁이 상당히 성장했다. 이것이 명확히 나타난 것이 바로 2019년 3.8 세계 여성의 날 행진으로, 원래도 규모가 컸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었다. 대규모 행진 외에도, 칠레 여성운동 진영은 8M 여성주의자 연석회의를 건설해 조직적 힘을 하나로 모았고, 다른 단체와 함께 2020년 1월에 제2차 투쟁하는 여성의 다민족 회의를 개최했다. 3,000명 이상의 여성과 성소수자가 회의 프로그램과 현재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했다.

2019년 10월 18일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중 봉기 기간, 칠레 여성은 거리에서 칠레의 구조적 변혁을 위해 싸웠다. 투쟁에 참여한 칠레 여성은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권 하에서 자본과 자본을 대변하는 정치가의 이해를 맹목적으로 수호하는 경찰과 군의 잔혹한 탄압을 받았다. 시위와 탄압 과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성폭력은 가장 지독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였다. 여성주의 운동은 콜렉티보 라 테시스(페미니스트 예술공동체)의 공연과 그들이 외친 구호 ‘너희가 성폭행범이다’를 통해 이러한 폭력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공연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칠레 여성주의 운동 진영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이래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삶의 불안정성을 거부하는 다른 사회 및 정치 운동 세력과도 연대한다. 칠레에서 진행되는 주요 투쟁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민중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개헌 과정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 투쟁은 개헌 과정에서 성평등(gender parity)을 추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록산느 던바-오티즈, 아나 말도나도, 필라 트로야 페르난데즈, 비자이 프라샤드가 공개서한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볼리바리안 혁명을 수호하는 다수가 여성이다. 베네수엘라 혁명 과정에서 여성은 수십 년 간의 자본주의 긴축 정책으로 침식당한 사회 구조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중의 힘을 발전시키고 참여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에는 여성의 노동이 필수였다. 3,186개 코뮌의 대변인 중 64%, 48,160개 공동체 평의회 지도자 대다수, 지역 공급 및 생산 위원회(CLAP)의 지도자 65%가 여성이다. 베네수엘라 여성은 일터뿐만 아니라 코뮌이 볼리바리안 사회주의의 원자 역할을 하는 사회 영역에서의 평등을 요구한다. 사회 영역에서 여성은 자치와 이중 권력의 가능성을 건설하여 점진적으로 신자유주의 구조를 침식하고자 노력해 왔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투쟁과 저항 과정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방법에 대한 분석과 토론에서 여성과 여성의 요구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사진: 케랄라 여성의 벽에는 성평등과 케랄라 주의 르네상스 가치를 수호하고 우파의 공격에 반대하는 550만 명의 여성이 참여했다. 케랄라 주를 감싼 이 벽의 길이는 남북으로 620km에 달했다. 2019년 1월 1일/사진 출처: 비샤크 T.

사진: 케랄라 여성의 벽에는 성평등과 케랄라 주의 르네상스 가치를 수호하고 우파의 공격에 반대하는 550만 명의 여성이 참여했다. 케랄라 주를 감싼 이 벽의 길이는 남북으로 620km에 달했다. 2019년 1월 1일/사진 출처: 비샤크 T.

모디 정권 하 인도 여성의 상황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선출된 이래로 인도인민당(BJP)과 BJP 계열의 힌두트바(힌두 민족주의) 단체는 소수자와 진보 세력에 대해 만연한 혐오 발언의 전파를 급격히 늘렸다. 이러한 혐오 캠페인을 통해 우파 세력은 인도 사회 구조를 찢어버리고 자신들의 분열주의적인 이념에 부합하도록 사회를 재편하고자 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사람에 대한 폭력의 위협이 상존할 뿐 아니라 사회 전역에 걸쳐 일반화해 정착한 폭력의 그늘도 여전히 존재한다. 끔찍한 것은 우파 단체와 집단 폭력세력이 법망을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여성은 폭력이 만연한 이 국가에서 가장 영향을 받고 있다.

2014년 이래로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특히 성폭력이 인도 전역에서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는 인도 전역의 여성에게 공포를 주입함과 동시에 분노를 자아냈다. 올해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아마 우타르프라데시 주일 것이다. 우타르프라데시 주는 종교, 카스트 등으로 사회를 분열하고자 하는 의제를 밑바탕에 가지고 있는 BJP 지역공동체 정치의 진원지이다. ‘성직자’에서 BJP 지도자로 변신한 요기 아디트야나스 우타르프라데시 주 수상은 주 정부기구를 활용해 무슬림을 위협하고 이들의 시민권을 박탈하여 자신만의 힌두 라쟈(‘힌두 국가’)를 건설하는 데 열심이다. 주 의회에서 주 정부가 고백한 바에 따르면, 아디트야나스가 우타르프라데시 주 수상으로 취임한 이래로 여성을 노린 범죄는 33% 증가했다. 한 젊은 여성이 BJP 소속 국회의원에게 성폭행당한 끔찍한 고통은 BJP 정권 하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피해 여성이 이 국회의원을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을 때, 여성의 아버지는 경찰에 구금되어 고문당한 끝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피해 여성이 법적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하자, 가족과 변호사가 동승하고 있던 승용차로 트럭이 돌진해 두 명의 가족이 사망하고 이 여성과 변호사는 중상을 입었다.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힌두트바 세력은 격렬하고 폭력적으로 이에 반대한다. 수많은 여성 활동가가 케랄라주의 유명한 사바리말라 사원에 여성도 입장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한 지 수년만에 2019년 인도 대법원은 여성이 사원에 입장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BJP의 전국 지도자와 중앙 관료는 신성한 사원이 오염된다고 생각해 월경을 할 수 있는 여성이 신성한 사원에 들어가는 것을 비난했다. 그럼에도 케랄라 주의 좌파민주전선 정부가 여성의 출입을 인정하고 이를 시행하자, BJP와 기타 우파 단체는 폭력적인 폭도를 동원해 사원에 방문하는 여성을 공격하고, 여성이 사바리말라 사원에 출입할 수 있는 권리에 반대해 주 전역에서 난동을 부렸다.

BJP 이데올로기의 핵심에는 여성을 복종시키고 카스트 제도를 지지하는 힌두트바 가부장제가 있다. 여기서 여성은 어머니, 바라트 마타(‘어머니 인도’)로 묘사되며 국가적 명예를 상징한다. 바라트 마타가 내부의 적, 즉 무슬림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미신은 사회를 종교 정체성을 기반으로 양극화하고, 정치적으로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BJP가 여성을 수용한 것은 가부장적 관습이나 구조를 해체하거나 가부장제에 도전한 결과가 아니라, 힌두트바 이데올로기의 방식과 힌두 라슈트라(신성한 어머니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힌두 국가)의 체계에 따른 것이다. BJP의 상위 조직인 힌두교 민족주의 단체 민족봉사단(RSS)은 순결을 간직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 여기고, 여성이 공동체의 명예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RSS는 사원과 바잔(힌두교 찬송) 그룹 내 여성을 통해 종교성의 물결을 진흥시켰으며, 미신과 종교의식을 특히 강조했다. 이러한 그룹을 통해 힌두트바 우파는 노동자를 동원하고, 극우 세력이 여성을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일에 동원하는 것을 가속화했다. 지난 수십 년 간, 노동연령층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급격히 줄어, 2017년 7월부터 2018년 7월 사이의 주기적 노동력 조사(PLFS)에 따르면 오늘날 23%에 머무르고 있다.

우파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근거 없는 주장 중에는 여성이 일자리를 찾기보다 가정에 머무는 이유가 단순히 남성이 보수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농촌 여성의 주 고용원인 농업 부문의 일자리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주로 영농기계화로 인해 줄어드는 등의 다른 요소도 여성이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남성은 계절적으로 또는 장기 이주 등을 통해 도심지에서 일자리를 찾지만, 이 과정이 여성에게는 더욱 어렵다. 일자리 때문에 강제로 지역 공동체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면 양육의 책임까지 떠안고 있는 여성에게는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족의 주요 돌봄 노동자인 경우가 많은 현실은 결국 여성이 적당한 일자리를 찾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원래 살던 지역 공동체를 벗어나서 안전한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가족이 같이 이주한 경우나 이미 도심지에서 살고 있는 경우에는,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여가며 통근(대부분의 도시 노동 계급의 현실)을 하게 되는데, 양육, 요리, 청소, 기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여성에게는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BJP 정부는 임금평등, 직장 내 탁아소 운영, 안전하고 성폭력 없는 일자리 보장 등 여성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그 어떠한 정책도 내놓지 않았다. 대신에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여성이 수십 년 간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자유를 점점 앗아가고 다시금 종교적 명예와 정체성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심각하고 지속적인 공격은 전국적인 대규모 저항에 부딪쳤다. 인도 여성은 인도 헌법 조항을 근본적으로 위반하는 시민권법 개정안(CAA), 국가시민명부(NCR), 인도주민구등록(NPR) 반대운동을 이끌고 있다. 델리시 샤힌바그에서 여러 소도시, 구, 읍, 면에 이르기까지, BJP가 주도하는 시민권에 대한 공격을 반대하는 운동에서 여성이 최전선에 서 있다.

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의 처치 스퀘어에서 불공정한 노동 관행과 저임금에 항의해 유니언 빌딩까지 행진하기 위해 모인 가사 노동자. 2019년 6월 / 사진 출처: 이흐산 하페지, New Frame

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의 처치 스퀘어에서 불공정한 노동 관행과 저임금에 항의해 유니언 빌딩까지 행진하기 위해 모인 가사 노동자. 2019년 6월 / 사진 출처: 이흐산 하페지, New Frame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저항과 투쟁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반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을 필두로 여러 투쟁에서 여성이 중심 역할을 했다. 1954년 4월 17일 요하네스버그에서 발족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성연맹은 여성해방을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투쟁의 중심으로 삼는 여성헌장을 채택했다. 수년 후, 도로시 니엠베(흑인 해방조직인 아프리카 민족회의 운동 지도부. 1994년 국회의원 당선)와 플로렌스 음키제(반 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이자 노동운동 활동가. 1994년 구의원 당선)는 1959년 더반시 카토마노 판자촌에서 일어난 반란 투쟁(시 당국이 이곳에 비어홀을 건설하고 판자촌을 강제 철거하는 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폭동)의 주요 지도자로 부상했다. 1973년 더반 파업과 흑인 노동조합 운동의 재탄생 이후, 자부 은들로부와 엠마 마시니니가 노조 운동에서 주요 주체로 떠올랐다. 여성은 1980년대에 민주연합전선의 기치 아래 나타난 공동체 기반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한 영향력 있는 백인 강단 페미니즘 조류는 민족 해방을 위한 더 광범위한 투쟁과 관련한 싸움에 여성이 참여하는 것을 완전한 여성주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용감한 반 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이자 주요 페미니스트 지식인인 놈보니소 가사라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2007년에 “왜 흑인으로서의 자각과 해방에 대한 투쟁과 페미니즘 사이에 베를린 장벽을 쌓는가?”라며 일갈했다. 이 논쟁은 역사를 거치며 일단락되었다. 인종, 젠더, 계급 문제와 연관된 투쟁에 참여한 여성이 더 이상 진정한 여성주의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되는 일은 사라졌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진 후, NGO 기반의 ‘시민사회’가 대중 조직을 대체하면서 나타난 전반적인 과정 속에서 페미니즘은 NGO와 학계에 주로 자리한 전문 영역으로 변했다. 풀뿌리든 대중 운동에서든 페미니즘은 폭동의 형태를 띨 때조차 페미니즘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보통 이러한 류의 전문 페미니즘이 집중했던 일은 법과 정책을 바꾸고 엘리트 구조에서 여성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물론,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 에이즈 퇴치 시민단체인 치료행동캠페인(TAC)과 관련된 업적과 같은 중요한 예외 사례도 있다. 당시에 벌어진 의약품 접근권 투쟁은 대중의 정치세력화에 특히 중점을 두고서 이루어졌다. 2009년이 되면서 매우 가부장적인 제이콥 주마가 대통령이 되자 전문화된 페미니즘의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주마는 일반 유권자뿐만 아니라 좌파와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내에서 조직된 여성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정책, 법, 엘리트 내 여성 대표성에서 페미니즘이 적용된 정도는 대중 권력을 건설하고 사회의 상식을 형성하는 데에 페미니즘이 적용된 정도와 큰 차이가 있었다.

오늘날 남아공은 무서울 정도로 높은 비율의 여성 대상 폭력(성폭력 포함)에 신음하고 있다. 사형제의 부활, 법치의 중단, 또는 남성이 여성을 ‘보호’ 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는 형태로 이러한 위기에 반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대중 페미니즘은 여전히 엘리트 공공 부문과 학계 및 NGO 대부분에서 무시당하고 있다. 그러나 슬럼 거주자 운동(Abahlali baseMjondolo, AbM)은 대중 페미니즘의 중요한 현대적 사례이다. 빈집 점거 운동인 AbM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나타난 가장 큰 사회 운동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회원 중 과반 이상이 여성이고, 지도부에도 여성이 많이 있으며 여성 정치세력화의 언어를 이용해 여성주의 이슈를 제기한다.

브라질이나 인도와 같은 국가와는 달리 남아공에는 대학 교육을 받은 변호사나 언론인 같이 훈련된 지식인 및 전문가와 공동체 조직, 사회 운동, 노동조합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들을 연결하는 지속적이고 전국적인 여성운동이 없다. 이러한 연결성을 건설하는 것은 남아공뿐만 아니라 전체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남반구의 다른 국가와의 연대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창조성, 힘, 연대
전 세계 곳곳의 긴축 정책과 자본주의에 맞서, 여성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보수주의의 득세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실험을 지지하는 것에서 창조성, 힘, 그리고 연대를 보여주었다. 여성이 만든 여러 과정과 다양한 대안이 가지는 유사성을 고려할 때, 국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은 필수이다.

위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여성이 이러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혁명 과정에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관점을 포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참여와 리더십으로의 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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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Lenin, V.I. ‘Speech at the First All-Russia Congress of Working Women, November 19, 1918’. Lenin’s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Moscow, Volume 28, 1974, pages 180-182. First published: 22 November 1918, Pravda No. 253.

Cinzia Arruzza, Tithi Bhattacharya, and Nancy Fraser. Feminism for the 99% A Manifesto. Brooklyn, New York, Verso, 5 March 2019.

Federici, Silvia. Caliban and the Witch: Women, the Body and Primitive Accumulation. Brooklyn, New York, Autonomedia, 2004.

OXFAM. Time to care: Unpaid and underpaid care work and the global inequality crisis. 20 January 2020.